늦은 밤길은 위험하다.
그것은 모든사람들에게 똑같이 통용되는 불문율이다.
더군다나 늦은 밤 스산한 골목길은 위협적이기까지 한데, 뒤에서 [뚜벅뚜벅] 누군가 뒤따라 오는 소리까지 들린다면 상당히 두렵고 진땀이 바싹바싹 솟아오를 만큼 박진감 넘치는 스릴까지 동반된다. 심장이 덜컹덜컹 거리고 속이 미식거리는데다 뇌가 덜렁덜렁 되기까지 한다.
[뚜벅뚜벅]
자박거리는 내 발걸음 소리를 바짝 뒤따르는 뚜벅이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담백하고 한가한, 발자국이 선명히 남을듯 또렷한 발걸음 소리는 적당하게 기온이 오른 훈훈한 이른봄밤에 부는 청량하고 시원한 느낌의 바람만큼이나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어 줄듯도 하지만,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주위가 어둑하고 내뒤를 밟는듯한 의식이 지배적인 이순간에는 그닥 반가운 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잔뜩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 사이로 퍼지는 소리는 어딘가 음산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
[뚜벅뚜벅뚜벅]
자박거리는 내 발걸음이 속력을 높이 가할수록 뒤에서 따라오는 이의 발걸음 소리도 점점 높아만 간다. 마치 나를 비웃듯 빈골목을 울리는 발걸음 소리는 내게 이젠 더없는 공포다. [뚜벅뚜벅뚜벅] 신경을 너덜너덜 넝마가 되게 만들어 버리는 그 발걸음 소리에 내 걸음은 더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제기랄. 이렇게 되면 뛰는수 밖에 없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뒷덜미에 강한 힘이 실린 억센손길이 덮쳐왔다.
“윽-“
커다랗고 서늘한 손의 기운이 목덜미를 잡아채더니 나를 강제로 막다른 골목 끝으머리로 잡아당겨댔다. [버둥버둥] 절박한 심정으로 몸을 허우적 거렸지만 우악스런 손길은 좀체 누그러들 기미 없이 여전히 거칠기만했다.
“뭐야! 이거놔-!…”
안돼! 라고 말하려는 순간 [퍽-]하고 타격음이 들렸다. 배가 터져버릴 듯한 통증이 느껴지며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믿을거라곤 다리힘 뿐인데 배를 한대 얻어맞고 나니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동공을 통해 들어오는 세상이 멍하게 보였다. 진한 여운을 남기며 퍼지는 통증에 소리를 지르려던 입조차 조개처럼 꽉 다물어버렸다. [끅끅] 거리는 기괴한 신음성의 고통을 전하는 내 소리가 막다른 골목 한쪽 구석에서 불쌍하게 울렸다.
“아… 하… 으―”
단 한대를 맞았을뿐인데 아직도 아릿하게 퍼지는 고통의 쓴맛에 옴짝달싹을 못하고 있는 내 얼굴 위로 달을 등진 커다란 남자의 그림자가 길다랗게 내려앉았다. 본적도 만난적도 인연도 없었던 상관없었던 이가 단한번의 폭력과 잠시 휘두른 거친 손길로 나와 적이 되었다. 악의적으로 눈을 부라려보지만 진하게 퍼져오는 아픔에 볏짚단처럼 힘없이 그의 마음대로 몸이 후들렸다.
“― 뭐 ― ― 하 ―! ―”
뭐하는거야라고 물으려던 내 입이 딱 멈춰버렸다. 오늘 처음만난 얼굴도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한 무식한 무력을 행사했던, 나보다 덩치가 두배가량 큰 남자의 손이 거침없이 내 옷속을 파고 들었다. 뒤가 막힌 골목의 코너로 몰린 나는 딱 한대 맞은후로 단단한 남자의 힘에 짖눌려 꿈틀거려 보지도 못한체 어거지로 끌려와 옷이 벗겨지는 수모를 당하고있다. 진짜 뭐하는거야.
“너― 뭐― 읍-!!!”
거침없는 손길로 파고드는 남자의 행동에 잠시 할말을 잃었던 내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어둠 속에서 가만히 미동도 없던 그의 얼굴이 내 얼굴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그리고 잠시 텀이 있는 사이 한마디 내뱉기도 전에 열린 입술 사이로 뜨거운 덩어리가 밀려들어왔다. 머리 위로 확 풍겨오는 남자의 진한 체취. 낯선 남자의 거침없는 손길보다, 거친키스보다 코끝을 산만하게 만드는, 정신을 몽롱하게 어지럽히는 푸른빛의 서늘한 체취가 너무나 무서웠다.
“하아.. 하아… 하아….”
단추를 헤치고 셔츠 사이를 파고든 시원하고 커다란 손이 몸 이곳저곳을 더듬는 사이 밀착하듯 내 하반신에 딱달라붙은 그의 하체가 옷을 입은체로 나를 유린하듯 비척거렸다. 옷이 쓸리는 소리가 이렇게 음란하게 들릴줄 미처 몰랐다. 남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곳에 그의 손이 닿았다 떨어질때 마다 눈물이 솟구쳐 올라올것 같았다. 왜이래.싫다고 고개를 저어도 몸을 비틀어도 단단한 몸을 가진 남자에게 통하질 않는다. 피부를 쓸고가는 그의 손길이 아래로, 아래로 낙하할때 내 심장도 아래로 아래로 낙하해서 땅바닥 아래로 철푸덕 소리를 내며 툭 떨어져버렸다.
“으으음.. “
몸을 희롱하는 오른손이 있다면 음탕하게 내몸을 비비는 하체가 있다면 왼손은 내 얼굴을 움켜쥐고 그의 혀를 받아들이기 좋도록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의 온몸이 내게 무기로 다가온다. 나의 온몸이 그의 희롱의 대상이 된다. 그만해. 안돼. 싫어. 제발. 속절없이 몸을 버둥이지만 그럴때에도 그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나를 단단히 움켜잡기만 한다. 그러다 안되면 [퍼억-] 긴 타격음과 함께 피부가 떨어져 나갈정도의 아픔을 선사하며 무력을 행사한다.
“…. 하 ….”
쌕쌕이는 내 가쁜 숨결사이로 그의 입술이 덮쳐온다. 순간 퍼지는 그의 체취는 여전히 살떨리도록 새파랗게 날이 서있는것 같아서 서늘하고 무섭다. 얼얼한 피부를 쓰는 그의 손이 좀더 거칠어 졌을쯤 내 바지가 아래로 스르륵 흘러내렸다. 이미 서있을 힘조차 없이 얻어맞은 나를 그가 안아들고 있다. 흐느적대는 다리 한쪽이 그의 탄탄한 어깨에 실렸다. 다리 한쪽이 그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내 오른쪽 겨드랑이 사이로 왼쪽팔을 밀어넣은 그가 나를 끌어안은 기이한 자세가 되자 허리를 쓸던, 가슴을 더듬던, 아랫배를 배회하던 그의 오른손이 내 다리사이에 있는 물건을 그려쥐었다. 옷을 입었던체로 무던히 자극을 받았던 내 물건은 한번의 반항없이 피가 확 몰리는 느낌이 나더니 벌떡 일어섰다. 수치심에 얼굴에 피가 몰렸지만 그는 그것따윈 관심도 없는듯 나에게 사정을 강요하듯 물건만 쥐었다 폈다, 쥐었다 폈다했다.
“아아아아…. 하앗 ….!”
내소리가 아닌것 같은 이상한 비음이 울려퍼지고 순간 몸에서 열이 싹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그의 손에서 농락 당하던 물건이 뿌연 액체를 뿜어내자 어둠속에서 표정없이 있던 그의 얼굴이 조금 웃은것도 같다. 이건 강간이야. 다음 동작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알고있다. 옷속을 파고 들때와 다름없이 거침 없는 동작으로 그의 손이 내뒤를 파고들었다. 간질이듯 축축하게 젖은 손이 뒤에서 움직거리자 내 피부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찔거렸다. [쭈뼛-], 그의 손끝이 몸안으로 침범하자 온몸이 뻗뻗하게 굳어버리며 흐느적 거리던 몸 전체에 근육이 벼락이라도 맞은듯 빳빳하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윽”
손끝이 조금 들어오더니 쑤욱- 미끌거리는 손가락 하나가 온전히 몸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조금 움직거리곤 두번째 손가락이 잠시후엔 세번재 손가락이 들어와 이리저리 구겨진 카펫을 펴듯 주름진 곳을 하나하나 세세히 더듬어가며 펴듯이 만진다. 배를 맞아 미식거리던 속이 더욱 뒤틀려갔다. 금방이라도 토사물을 개워낼것 같은데 끅끅 고통섞인 신음만 흘릴뿐 빈속이 울렁거리기만 한다. 지독한 이물감이 한순간 싸악 빠져나가고 몸이 자세를 가다듬듯 그의 손에 의해 한번 들썩여졌다. 그리고 뜨거운 그의 물건이 나를 향해 빳빳히 고개를 쳐들었다.
“하악”
손가락이 순조롭게 들어왔던것과 달리 범인의 크기와는 사뭇다른 그의 거대한 물건이 내몸속을 뻑뻑하게 가르며 밀려들어왔다. 뱃속이 불편해지며 못먹을 음식을 삼킨것 처럼 답답하다. 어떻게든 그만두게 하기위해 바동거려 보지만 그럴수록 내 몸안에 자리를 잡은 그의 든든한 물건으로 인해 고통만 더 커질뿐이다. 찔러대는 그와 피하려고 버둥이는 나. 짙은 어둠이 깔린 골목길 구석에서 처절하게 움직여보려 하지만 손가락 끝에 들어가는 힘조차 내 힘이 아닌듯, 그의 품안에 안겨서 무너져 내리는게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내몸이 내것 같지 않다.
“아..으…읏…하아…”
피부가 맞부딪혀 질척이는 소리가 귓전을 아프게 때렸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그렇지? 애써 외면해 보려해도 덜렁이는 몸이 내것이 맞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그만. 소리라도 한줄기 내질러야 하는데 제대로 된 반항 한번없이 타인의 품안에 안겨 범해지고 있다. 위 아래로 몰아붙이던 그의 피스톤질이 더욱 빨라질 무렵 몸속에 뜨거운 액체가 화악 퍼져나간다. 끝났다. 스르륵 내 몸에서 그가 빠져나갔다. 바지가 입혀지고 셔츠의 단추가 잠긴다. 찬바닥에 나를 내려앉힌다. 멍한 내눈에 표정 하나 없는 그의 무기질 얼굴이 잠시 비췄다 사라진다. 냉혈한 같은 그 무서운 눈이 내눈과 오래도록 얽혀 있었지만 말 한마디 듣질 못했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가 돌아서서 좁은 골목을 빠져나갔다. 바로 코앞에서 범인이 도망을 갔지만 한참동안이나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 하 … 하 … 하 … 하하 ……큭 … 하하하 .. 하하하하하하하 “
파르르 턱이 제멋대로 떨렸다. 바르르 다리가 제멋대로 후들거렸다. 손이 축 쳐진체로 바닥에 닿아 있었다. 다리는 힘 한줄기 들어가지 않은체 널부러져 있다. 허리가 콕콕 바늘로 찌르듯 아파왔다. 몸이 두개로 쫙 갈라질듯 고통이 엄습해 왔다. 머리가 지끈거린 와중에 실성한 이처럼 웃었다. 영혼이 이름도 모르는 이에게 범해졌다. 단지 몸뿐이었는데 내 영혼이 나도 모르는 사이 검은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흑단처럼 까만 진흙물을 덮어쓴 내 영혼이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빼앗긴 이제는 짙푸른 그의 체취를 뒤짚어쓴 몸을 신나게 비웃고 있었다.
“막내야”
세상이 끝날줄 알았다. 찬바닥에 절반으로 쫙 갈라진체로 죽어 버릴줄 알았다. 눈뜨고 일어났을때 도깨비 방망이 뚝딱 두드리고 나면 금덩이가 우두두 떨어지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듯 뭔가 변할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무일도 없었다. 언제나와 같은 평범한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어두운 골목길을 두려움에 치를 떨며 돌아오는 것이 달라졌다다. 그외에는 눈꼽만큼의 변화도 없었다.
“임마”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며 쏟아지고 있었다. 그 햇살은 모든이에게 공평하게 고루고루 비추어 주었고, 내게도 빛을 내려주었다. 너무 밝아서 인상을 찡그릴 정도로 강한 햇살이었다. 어제의 태양은 오늘도 내일도 모래에도 그 다음날에도 언제나 처럼 뜰것이다. 눈물이 날 정도로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데 언제나처럼 선배님이 나를 불렀다. 탱탱거리는 플라스틱 물통 소리만 들어도 왜 부르는지 묻지 않아도 될것 같다.
“주세요”
물한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워진 빈통을 들고 정수기가 있는곳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햇살은 뜨겁게 나를 비춘다. 그건 강간이었다. 어두운 밤 아무도 목격한이 없는 지독한 강간. 당장이라도 경찰서에 달려가 나를 범한 그녀석을 잡아달라고 정당하게 요구해야 하겠지만 내가 향한곳은 집이었다. 찬바닥에서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간곳은 법에 호소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은것도 아니고, 신고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려고 병원으로 간것도 아니였다. 말할수 없었다. 말해야 하는데 그래야 더이상 나쁜짓을 나뿐 아니라 다른이에게도 못할텐데 내 머리는 누군가에게 알려 나와 같은이가 없도록 하기 위해선 신고해야 한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그럴수가 없었다. 움츠려드는 몸, 오그라드는 심장, 꽉 쥐어진 주먹이 아릿하게 퍼지던 고통을 기억해냈다. 두려움은 용기보다 강했다.
[쪼르륵]
투명한 물소리를 내며 비워진 물통에 담기는 물을 봤다. 내가 누군가에게 끌려 강간을 당하건 안당했건 물은 언제나 맑고 투명하다. 변한건 그저 움츠려드는 나하나 뿐이다. 응? 물을 받고 있는데 뒤에 누군가 다가와 머리 위로 작열하는 태양을 가려준다. 흐음. 가려준게 아니라 놀리려는것 같다. 기분이 일순간 가라앉는다. 뭐야이건.통유리 문을 통과해 그대로 쏟아지는 햇살을 막아선 이는 굉장히 장신이었다. 내뒤에 서서 손으로 내가 자신에게 어느만큼 오는지 가늠해보고 있는 장난스런 모습이 까만 그림자를 통해 또렷이 보였다. 뭐야? 물을 다 받고 뒤로 휙 놀아서며 내 뒤에서 장난스럽게 키를 비교하는 이를 눈을 치켜뜨며 노려봐줬다. 젠장. 머리 위로 확 풍기는 새파랗게 날이선 남자의 체취가 어두운 밤의 기억을 되살렸다. 빤히 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안면이 있는 익숙한 것이었지만 머리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얼음알갱이 같은 체취가 좀더 익숙했다. 커다랗게 뜨여진 눈이 한참이나 그를 바라봤다. 악연이군.
“…….. !!!!!! ……”
“………”
조용히 입꼬리에서 호를 그리고 있던 내뒤에 섰던 남자의 웃음이 조금씩 사그러들었다. 반대로 [키득키득] 재미난 구경이 난듯 선배님들이 몰려와 나와 그의 주위를 빙 둘러싼체로 조그맣게 키득이고 있었다. 장신이 아닌 나의 키를 대놓고 놀리는 이는 꽤 많았다. 미운 행동이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기에, 그런 상대가 나타나면 적당히 비꼬아주거나 따지듯 떽떽거리곤 했었다. 오늘도 그럴거라고 생각했는지 주위에 와글와글 사람들이 모여들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인다. 그러나 그에게 화를 내기는 커녕, 말 한마디 붙이지 않고 치켜 떴던 눈을 내리깔고 그대로 스윽 지나쳐 밖으로 나와버렸다.
“어? 남지웅-!! “
말 없이, 소리 한번 없이 그의 시선에서 도망쳤다. 사물을 뚫고 제갈 길을 휑하니 가버리는 유령이 된듯한 나를 부르는 선배님의 소리가 들렸지만 못들은척 지나쳐버렸다. 단단히 얽혔던 시선 한번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수 있었다. 아니, 훨씬 전부터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다만 코앞에서 대면을 하자 그가 누구인지 헷갈려버렸다. 우영원. 그는 얼마나 나를 비웃을까? 축구선수 씩이나 되는 녀석이 남자에게 당해버렸으니, 같은 축구선수라는게 꽤나 비웃음을 사겠지. 한국축구의 기둥이라는 그가 길바닥에서 강제로 자신과 같은 같은 남자를 거기다 축구선수인 더불어서 같은 팀선수를 강간하다니 이것도 꽤나 비웃음 살만한 일이지만.
“야, 막내야-“
“네”
“어우, 우리 막내 상처받았구나. 쯧쯧, 나쁜놈들. 내가 보듬어줄게. 이리와.”
“괜찮아요”
담벼락 아래에 구석진곳에 숨어있는 나를 용케도 찾아낸 선배님이 나를 위하는척 한다. 우영원의 행동이 내 최대의 콤플렉스를 건드린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사내 녀석이 뭘 그런걸로 쫌생이 같이 빌빌거려’ 라고 했을 보통때의 선배와 달리 무척 사근사근하다. 나를 안으려는 선배를 피해 더욱 구석으로 몸을 움츠리다가 부들부들 떨고있는 내 팔을, 팔 못지않게 덜덜 흔들리고 있는 다리가 보였다. 하아. 한심해라.
“야, 그러지 말고 가서 콱 한대패줘”
“아뇨, 그냥 여기 혼자있을래요”
거의 울상이 다된 내 표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내 과도한 감정 표현과 자기 의사에 떨떠름해진 선배님의 얼굴이 보였지만 그런거 신경써줄 틈이 없다. 바들거리는 심장이 오그러들었다 빵빵하게 부풀어올랐다 하는것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선배가 가는 소리가 들리고 내머리고 [쿵-] 조그맣게 벽을 찧었다. 벽에 머리를 부딪힌 고통보다 지끈지끈 머리 내부에서 피어나는 고통이 더 심했다. 무릎을 세워 뜨끈뜨끈 열이 오르는 머리를 감싸쥐고 엎드렸다. 이 몸은 아직 우영원이란 인간의 손길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아, 강간범이 우영원이었다니.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지웅아 연습해야지”
“어, 갈게”
하얗게 질린체로 태양이 작열하는 운동자에 나서자 감독님 표정이 일그러지셨다. 축구는 단체경기다. 그러면서도 개인기가 아주 많이 요구되는 경기이기도 하다. 오른쪽 날개를 맡고 있는 내가 하얗게 질릴만큼 자기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큰 문제가 되지만 팀전체로 봤을때 마이너스다. 그런데 같은 진영을 향해 공격해야 할 사람 중 하나가 나를 강간했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수 있는 둘만의 일. 마주 선 그사이로 흐르는 뻑뻑한 공기가 내생각이 진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어디아파?”
“아니요”
“뛸수있어?”
“네”
코치님에게 힘차게 대답하는 목소리와 달리 여전히 얼굴이 하얗게 떠있다. 적어도 그만큼은 뛰어야 되지 않겠나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너무 꿈이 크다. 우영원. 우영원. 저기 저 앞에 보기좋은 체격과 골격을 가진 남자. 나와 마주치면 묘하게 인상을 찌푸리는 그. 오늘 처음 만났지만 이야기라면 정말 질릴만큼 들었다. 전국중학축구 챔피언이었다. 그때부터 각계의 주목을 받으며 급성장하더니 고등학교에 올라가기가 무섭게 청소년 대표팀에 차출됐다. 물론 청소년 대표에 고교생이 꽤 있지만 1학년이 그것도 센터 포워드로 기용되는건 거의 드물다. 청대에서 좋은 성과를 내자 올림픽 대표에서 그를 부르는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는 고등학교 첫해에 청대, 올대, 국대 세곳에서 모두 뛰는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다.
“지웅아”
“네?”
“어디아프냐?”
“아니요”
허옇게 질린 내얼굴이 보기 안쓰러운지 아니면 줄창나게 운동장을 뛴후인데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내가 이상스러워서인지 선배님이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앞으로 어떻게 같이 뛸까 태산같던 걱정이 막상 연습경기 하나 하고나니 조금은 사라져 다행이라지만 빈번히 그와 마주해야할 앞날이 여전히 걱정스럽기만 하다.
“남지웅”
“응?”
“감독님 호출”
얼굴색이 그렇게 확연하게 허연걸까. 국가대표 대항전. FIFA 공식 A매치데이와 더불어 월드컵에 참가하기전 조율을 맞추기 위해 모인 국가대표팀의 막내인 나는 청소년대표와 올림픽대표를 왔다갔다 하던 사이 성년이 되어 국가대표의 부름을 받았다. 내가 한참 청소년대표를 하고 있던 무렵 우영원은 청소년대표를 떠나 국가대표 붙박이로 A매치에 나갔었으니 우리는 딱히 만날일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세계 유수의 축구클럽에서 우영원을 붙잡기 위해 엄청난 대우를 해주겠다는 러브콜을 때려댔지만 그가 간곳은 그에게 거액의 연봉을 주겠다고 했던곳이 아닌 자신을 테스트 하겠다는 콧대 높은팀이었다.
물론, 그는 테스트에 당당히 합격했고 신체검사에도 이상무를 받았으며 그해 신인왕, 득점왕, MVP등 상이랑 상은 모두 휩쓸며 연봉 100% 인상으로 재계약했다. 거기다 멀끔한 얼굴을 지닌 덕에 리그내의 선수중 인기가 단연 높다라고 표현할 만큼 넘치는 매력을 과시한다.
“저 부르셨다고해서 왔는데요”
감독님 호출이래서 갔더니 감독님은 없고 보면 내속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우영원과 코치님만 나란히 있다.
“어, 감독님은 잠깐 나가셨고 다른게 아니라 네방 침대하나 비었잖아?”
“…………………….. 네 …… “
“룸메이트다. 아까 얼굴은 봤지? 하기는 영원이가 워낙 유명해야지”
유명하지. 암요. 광고도 수십개 찍고. 그런데 유명한거랑 룸메이트랑 무슨 상관입니까? 코치님은 실없는 사람처럼 허허 웃으며 내쪽으로 우영원을 슬쩍 밀어붙인다. 고등학교 졸업후 약 2년간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나가있던 우영원이 대표팀 경기에 줄기차게 차출됐지만 대단한 옹고집인 그의 팀은 그를 보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끈기와 인내의 결정체라고 불리는 강국장님이 약 2년 4개월을 조르고 조른끝에 콧대높은 옹고집 프리미어 리그의 챔피언팀을 상대로 겨우 대한민국의 월드컵 준비를 위해 역대 최강이라고 불리는 스트라이커를 차출해내고야 말았다.
“…………”
“…………”
우영원도 나도 마주보는 침대에 누워 서로 말없이 있었다. 룸메이트란다. 적과의 동침이라. 맹수와의 동침도 이것보단 무섭지 않을거다. 말도 안돼. 어째서 내방이 가장 위험해질수가 있는거지? 흑단처럼 까만 진흙탕 물을 뒤집어쓴 내 영혼이 빈껍데기의 나를 보며 씨익 비웃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 까만 흙탕물 뒤집어쓴 영혼, 짙푸른 그의 체취를 휘감고 있는 몸. 삼박자가 척척 맞아 떨어지며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를 물으며 나를 몰아붙인다. 그냥, 확 창문열고 뛰어내려버려. 그게 너를위해 더 좋아. 내영혼의 비웃음이 머리를 아프게 울렸다. 왜 사는 걸까.
“좋은아침”
“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밥을 푸고 있는 나를 보며 동기하나가 인사를 한다. 결국 한숨도 못잤다. 뒤척임도 없이 손가락 까닥할수도 없이 가위에 눌린듯 숨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를 반복하고 나니 아침이 밝아와 있었다. 밤도 별거 아니였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나와 달리 2년전 주요멤버가 그대로 있는 대표팀에서 너무나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는 우영원은 저쪽 테이블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최하 5살은 많은 어르신들과 화기애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식사중이다. 누가 맞은놈 보다 때린놈이 더 불편하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잡히면 목아지를 확 따버릴거다.
“너 정말 괜찮겠어?”
“네”
정말 밤도 별것 아니였다. 꼬박 이틀간 잠을 못잤지만 사흘째 부터는 스르륵 새벽녘쯤 잠이 들었고 어제, 오늘은 8시간씩 푹 잘도 잤다. 오일간 지내본 우영원에게서 알아낸것은 녀석이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시선이 엉키며 말로 표현할 길이 없는 뻑뻑한 공기가 내 목을 죄여오지만 그것만 뺀다면 괜찮았다. 아니 괜찮아야했다. 가장 좋은 복수는 내가 행복한 것. 나는 행복해 질거다.
“얼굴이 허옇다. 알고있어?”
“괜찮아요. 못하면 감독님이 빼겠죠”
불만스러운 얼굴로 인상을 마구마구 찌푸리는 선배에게 대충 대거리를 해주고 내 자리로 가서 서자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적은 이제 더이상 적이여서는 안되는 동료여야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와 오른쪽 윙.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 내 포지션은 왜 윙일까 윙백도 자신있는데. 한심스런 한숨이 새어나올 무렵 내앞으로 상대팀 공격수가 눈에 힘을 빡 준체로 뛰어온다.
[툭-]
산만하게 페인팅을 해대는 상대를 봐주기가 싫어서 슬쩍 공을 위로 띄웠다. 오른쪽 발 안쪽에 안착하는 공을 산만한 상대팀 공격수를 피해, 하프라인을 넘어 오른쪽 진영 깊숙히 들어갔는데 패널티 박스안에 우영원이 보였다. [툭툭] 발끝에서 서글서글 하게 공을 차고 있는데 뒷통수만 보이던 우영원이 내쪽으로 스윽 돌아보는게 보였다. 진하게 얽히는 시선을 그대로 놓아둔체 [툭-] 가볍게 패널티 박스안으로 센터링을 올렸다. 녀석에게 떨어지던 아니던 난 내 할일은 다했다.
[퉁—, 툭—]
오른발로 재주를 부리듯 내가 보낸 공이 우영원의 발끝에서 가볍게 두번 튕겨졌다. 허벅지로 트래핑한 공을 발끝으로 살짝 방향을 틀더니 우영원은 조금의 망성임도 없이 [휙————-] 몸을 돌리면서 그대로 슛을 날렸다. 터닝슛 폼이 일품이다. 그런데다 앞선 공갖고 놀기도 일품이다. 공은 바람을 [쉭] 가르며 골키퍼의 안타까운 시선을 피해 [철썩-] 골대 그물망에 깊게 꽂히면서 네트를 흔들어댔다.
공의 움직임은 마치 내몸을 가르고 들어왔던 그의 행동처럼 거침없고 날카로웠다.
전반 시작 5분도 채 안된 상황 한국의 첫공격포인트는 근 2년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우영원의 골이었다.
[펄럭-]
쥐색의 커다란 종이 위에 [환상의 콤비] 라는 큼지막하게 박힌 유치찬란한 문구 옆에 나와 우영원의 얼굴이 나란히 찍혀있는 사진이 보였다. 환상의 콤비? 그래, 연습게임과 A매치데이의 경기 그리고 여러나라와 친선경기에서 한달간 합숙을 3경기에서 7골을 만들어 냈으니 환상의 까지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봐줄만한 공격수와 도우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왜 큼지막한 사진과 유치찬란한 문구가 몸서리치게 싫은걸까.
“씨발”
욕이 절로 나오고 얼굴이 알아서 일그러졌다. 신경질적으로 쫙 펴져있던 신문을 둘둘둘 말아접고 그대로 문을 향해 던졌다. [달칵] 소리가 들렸지만 후회하지 않았고 팔은 뒤에서 앞으로 거센 반동을 주었으며 손에 들려있던 신문은 문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퍽———–]
“……………………(씨발)…..”
연속해서 씨발이라는 말이 터져나왔지만 두번째 욕은 입안에서 그저 웅얼거렸을 뿐이다. 나의 룸메이트. 근 한달간 함께 먹고, 자고, 입고, 본 나의 룸메이트 우영원이 시간을 재기라도 한듯, 내가 신문을 냅다 던진 그 순간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연히 우영원의 수려한 얼굴 위로 둘둘 말린 두툼한 신문뭉치가 벼락처럼 내리꽂혔고 그걸 맞은 우영원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으나 얼굴은 조금 늦어버려서 뺨을 맞듯 신문을 직격탄으로 맞아버렸다. 속이 욱씬하고 싸하게 아픔을 전해왔다.
“불만 있으면 말로하지”
어깃장을 놓고픈 마음이 발끈 솟아오르도록 만드는 우영원의 눈길이 나를 가소롭다는듯 비껴뜨여 있었다. 삐딱해도 그냥 삐딱한게 아니라 사람을 내려보는 그런 비스듬한 눈길인데다, 입꼬리까지 쓰윽 올라간것이 정수리를 콕 찍으면 오는 찌릿한 전율같은 아픔을 줬다. 불만이 있으면 말로하라?!
“벙어리라도 된 모양이군”
한없이 진중한 목소리와 달리 비꼬일때로 비꼬인 나의 전혀 친애하지 않는 룸메이트는 자신의 매끈한 얼굴에 내리꽂혔던 신문뭉치를 [삭-삭-] 소리가 나도록 반듯하게 접으며 입을 꽉 다물고 있는 나를 다시금 내려다봤다.
방에는 침대와 그옆에 작은 테이블을 양쪽에 뒀으며 한쪽 테이블 위에는 전화기를 반대쪽 테이블에는 스탠드를 뒀고 붙박이장 두개가 방안쪽에 나란히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붙박이장을 중심으로 찍어놓듯 대칭으로 모두 두개인 방안에 [침대도, 붙박이장도, 테이블은 두개 한세트가 역시 두개였으며, 이불도 세트였고, 스탠드도, 전화기도 모두 똑같은것이 두개씩이었다] 유일하게 하나뿐인것은 욕실 뿐이었다.
“네가 … 강간범이지?”
불만이 있으면 말하라는 우영원의 말을 따라 나는 한마디 물었다. 중간에 어색한 떨림은 나의 멍청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질문이 겨우 끝나자, 흔히들 쓰는 표현으로 죽음 같은 침묵이 찾아왔다. 나의 힘겨운 질문에 입꼬리를 둥글게 말아올리고 있던 우영원의 얼굴에 순식간에 핏기가 싹 가시며 뻗뻗하게 굳어가는 표정은 ‘내가 강간범이야’ 라고 말하고 있는것 같았다. 마주서면 내게 확 풍기는 그 파란 얼음 알갱이 체취는 들이마시면 폐가 얼어버릴것 처럼 시린 그 체취는 우영원의 것이 틀림 없었다.
“…. 욱 – ….”
대답을 듣지도 못했다. 그저 푸르스름한 빛깔을 분출하며 하얗게 질려가는 우영원의 표정만으로 모든것이 확연했다. 그것만으로 내몸에서는 반응이 일었다. 역겨움. 혐오감. 증오. 저주. 끊없이 울컥거리는 심장. 숨을 마구 들이마시려는 폐. 정신없이 빙글거리는 머리. 눈앞이 멍해지며 세상이 빙빙 도는 경이롭기까지한 균형감각이 사라져버리는 경험. 벌떡 일어서서 어질렁한 머리를 억지로 끌고 욕실로 튀어갔다.
“…. 우욱 – …. “
터져나오는 토사물 속에서 아침에 먹었던 것들을 고스란히 확인할수 있었다. 내가 밀전병도 먹었던가. 해서는 안될 여유로운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 우욱. 입안이 더러움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쓴 위액이 하얗게 밀려 올라왔다. 한번 구역질 할때마다 눈물도 찔끔찔끔 함께 새어나왔다. 후들후들. 몸에 힘이 없어서 변기를 잡고 웩웩 대다가 몸을 일으키니 거울 속에 멍한 남자하나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눈에 핏발이 서있는,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어서 마치 걸어다니는 시체같은 그녀석은 나였다.
[쏴아아-]
텁텁한 입안을 물로 씻어내고 밖으로 나갔는데 내가 욕실로 튀어갈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하얗게 질려있는 우영원이 보였다. [털썩] 침대 위에 앉았다. 하얗게 탈색 되었던 우영원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꼬리를 스윽 감아올렸다. 마치 먹이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저돌적이고 자신만만한 그 표정이 눈쌀을 찌푸리게했다. 하얀 도화지 위에 연필로 스케치만 있던 그림에서 순간 수채화 처럼 화사한 색을 입으며 좀전의 당황한 얼굴은 온대간대 없고 화려하고 호젓한 우영원이 있었다.
“중국에 오기 일주일 전이였는데”
눈을 인공적으로 한번 깜박인 우영원이 날짜를 정확히 집어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는 우영원이 당당히 미소까지 지어보이니 다시 토기가 올라오는것 같았다. 우영원의 표정은 [그게 뭐 어때서]라는 표정이다. 참회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소 미안함, 혹은 죄인의 심정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잘못한 마음이여야 할 그의 표정은 사뭇 가소롭기 짝이 없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 마냥 비아냥스럽다.
“…………………”
바들대는 입술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고 부들대는 아랫입술을 어거지로 덥썩 물었다. 이가 딱딱거리며 아랫입술을 조았다. 죄를 들켰지만 ‘아, 그거’ 라는 표정인 우영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미소까지 베어물었다. 머리가 후들거린다. 이런 인간일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세상에 저런 사고관념을 갖고 있는 인간이 있을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더 가증스러운건 ‘조금 잘못된건가?’라고 내게 ‘내가 죄가 있어? 그게 왜?’라고 되묻는듯한 웃으면서도 웃는것 같지 않는 이 적막한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정도로 갑갑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는 말.
“너였군”
머리에서 피가 퐁퐁퐁 솟아올라 진한 빈혈기가 몰려오는것 처럼 현기증이 밀려왔다. 한술 더떠 이제는 침대아래에 내려져 있던 긴 다리를 쓰윽- 꼬아올리며 턱을 치켜올리는 그 모습이 마치 패션잡지에나 나올법한 모델처럼 으스대보인다. 하하. 까망물을 뒤집어쓴 내 영혼이 그의 눈에는 그저 한낱 개거지로 밖에 보이지 않나보다. 새파랗게 자기 체취 뒤짚어 쓴 내 몸뚱아리가 한번의 사정을 내뱉기위한 배출구 쯤으로 여겨지기라도 한모양이다.
“너 …. 너 ……. 호모야?”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은 보지않아도 이제는 비디오다. 사실 좀전에 거울을 통해 본 내인형은 밀랍처럼 하얗기도 했다. 귀신처럼 허옇게 뜬 얼굴로 ‘너 호모야?’라고 묻는 나를 조금은 유령같다고 섬칫해나 할까? 어쩌면 ‘너 따위가 나에게 가당키나 하냐’라고 나를 깔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나의 질문에 나온 단어는 다소 그의 성질을 은근히 긁는 종류의 것이 끼여있었다.
“그래, 호모야”
대답도 어찌 저리 쌈박할수 있는지. 그러니까 대성했나보다 너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운 우영원의 얼굴은 미안한 말이지만 웃을때 보다 좀 덜 살벌해보였다. 웃어서 끔찍하게 무서운 케이스가 저런거였나보다. 짐짓 눈쌀을 찌푸린 그는 내가 내뱉은 단어를 되새김질 하면서 좀더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호모는 다 그래?”
다시 한번 신경을 [직-] 긁는 내 질문에 그는 아까보다 더 살벌하게 입꼬리에 조그만 호를 그리며 웃었다.
웃지마, 무섭다. 거기다 재수 털리는 느낌도 들고, 어찌보면 역겹고 혐오스럽기도한 웃음이다.
“그날은 실수였어”
꾸욱. 아랫입술을 윗입술로 빨아들이며 으득하고 물었다. 덜덜 떨리는 몸을 더 지탱하지 못할것 같았다. 뒷목이 뻣뻣하게 저려오는걸 아래로 억지로 내리자 뇌가 앞으로 덜컹하고 쏠리는것 같다. 실수라. 너에겐 그냥 실수였나보군. 거참 말은 정말 빌어먹게도 쉽구나.
“미안해”
세상에 태어나서 미안하다는 소리듣고 기막힌건 처음이다. 아니, 화가나긴 처음이다. 미안해? 저게 미안한 태도일까. 침대에 다리 싹 꼬으고 유유자적 앉은체로 깍지낀 손을 까딱이면서 미안하다는 저말이 진심일까? 머리가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이걸 콱 죽일수도 없고 난감함 그 자체로구나라고 한번 비웃은것도 같다. 자꾸만 생전에 없던 눈물이 차고 올라서 황당하다. 미안하면 다냐? 그러나 한번 돌아 생각하면 미안한것 말고 또 뭐가있겠나. 그러나 역겨운건 역겨운거다.
“…… 욱 …… “
아까 다 토해서 이젠 올릴것도 없을것 같았지만 치밀어 오는 토기에 나는 또다시 룸메이트와 유일하게 공유해야 하는 곳인 욕실로 뛰어 갔다. 지금 토하고 있는것이 내가 먹고 속이 역반응을 일으켜 내뱉는 토사물인지, 아니면 나를 강간한 녀석에 대한 화남으로 인한 역겨움인지, 이런 머저리같은 나에 대한 자책때문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온몸에 힘이 쭉 빠질만큼 나는 몸에 있는 모든것을 개워내고 있다는것이다. 그것은 분명 이유는 모르겠으나 무엇이 더럽다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먹은 음식이? 녀석이? 내가? 셋중 하나는 틀림없이 내 구토의 이유일것이다.
“지웅이 나갈 준비해라”
“네?”
“나갈 준비하라고”
하루종일 틈만나면 웩웩 거렸더니 혹 그라운드에 나가서도 웩웩 거릴까봐 감독님이 고맙게도 스타팅 멤버에서 내이름을 제외 시켜주셨다. 도대체 애한테 뭘 먹인거냐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타국의 호텔 매니져에게 불만, 불평을 있는대로 늘어놓으셨지만 결국은 나에게 가장 화나셨다는걸 알고있다. ‘그래 나 호모야’, ‘그날은 실수였어’, 그리고 ‘미안해’. 세개의 문장으로 사람 하나를 완전 바보 만들어버린 우영원에게 경의를 표하며 난 경기 시작전까지도 줄기차게 올려댔다. 처음엔 ‘으윽 디려’라며 나를 기피하던 선배들은 나의 증상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지자 자신들이 먹은 음식에 불신하더니 이제는 혹 내가 죽을병에라도 걸린게 아니냐며 걱정스러워 하고 있었다.
“저요?”
“네가 지웅이지 그럼 내가 지웅이냐? 아파도 좀 참아. 영 안되겠으니까 그래”
코치님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중구난발 패스를 혹은 드리블을 하는 우리편 선수를 보며 한숨을 내쉬셨다. 환자에게 나갈 준비하라고 할 정도면 어느정도로 심한 상태인줄은 알겠으나 그래도 나조차 내 상태가 의심스러운데 경기에 나가라니 코치님을 비롯 스탶 전체에게 배신감이 든다. 고지대, 거기다 여직 싸워서 통쾌한 승리를 거둬보지 못한 상대에 대한 압박감이 겹쳐서 선수들의 몸놀림이 심하게 둔했다. 쭈욱, 쭈욱, 몸을 늘리고 경직된 근육을 [탁탁] 털어보지만 혹 경기에 나가서 꽥꽥 되는건 아닐지 걱정이 됐다. 정말 드럽게도 오늘 컨디션이 나쁜 선배를 보며 난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내가 가서 뛰는게 편할것 같다. 날개와 허리에서 받쳐주질 못하니 위에 있는 우영원도 죽을 맛인지 뛰는 폼이 영 즐겁지 않다. 그나마 실점하지 않는건 원톱인 우영원이 팀 후미진 곳 까지 내려와 고맙게도 수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 덕분인것 같다.
“공격해라, 그냥 공격해. 알았어?”
“네”
내등을 토닥이며 코치님의 감독님의 불만 사항을 짧고 간단하게 줄여서 전달했다. 그래, 원하는건 공격이지.
[짝-]
그라운드 밖으로 나오는 선배와 손뼉을 가볍게 부딪히며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자 다들 미안한 표정이다. 체격은 별로지만 체력에서는 별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손등으로 아래턱을 쓱 쓸며 천천히 달렸다. 경기장 안에서 만큼은 절대로 우영원을 도와야 하지만 그렇다고 별로 지고 싶지는 않다. 되도로 이기고 싶다.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니깐.
“너 아픈거 순 꾀병이지?”
경기가 끝났다. 운동장에 흐느적하고 드러누운체로 헉헉 거리고 있는 나를 보며 주장완장을 차고 계신 선배님 한분이 ‘흐응’하는 표정을 짓고 계시다. 결혼한 유부남 주제에 이상하게 야한 색기 줄줄 흘리고 다니시는 저분은 애아빠이시기 까지 한데 사실 철이 조금 없다. 말이 없고 과묵해 보이지만 일찍 장가 간걸 봐라, 사실은 꾼인거다. 꾼. 헥헥대는 후배를 일으켜 세워주며 고작 하는 말이 뭐? 꾀병? 이사람이, 이사람이 나를 뭘로보고 그런말을 하는거야. 선배만 아니면 한대 콱 패줬음 속이 시원하겠다.
“싫어요”
꾀병 운운하는 선배님에게 뒷목잡혀 질질 끌려간곳은 샤워실이었다. 열심히 박박 씻고 개운한 얼굴로 나와 이제 밥먹고 잠이나 자야지라고 생각했다. 울렁대던 속도 이제는 다 가라앉았다. 다시 우영원을 보면 뒤틀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때의 문제다라고 생각하며 복도를 걷고 있는데 빈복도를 가득 메우는 낮게 깔리는 남자 목소리에 우뚝 그자리에 멈춰서서 돌아봤다.
“싫은게 어딨어 임마”
“…. 진짜 ……”
몇명의 거물급 선배와 잡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는 악랄한 선배들이 우영원을 둘러싸고 협박 비슷한걸 하는게 보였다. 얼굴을 일그러트린체 선배님들께 화를 내는 우영원은 불만으로 가득차 보였다. 뭐라고 들리지 않게 욕설을 웅얼거리는것 같기도 했다. 녀석의 대표팀 데뷔전은 5년 전이였기에 연대기적 나이상으로 우영원 보다 선배이더라도 대표팀으로만 봤을때는 후배인 사람도 몇몇 있지만 우영원은 그런것에 연연치 않고 나이가 많으면 선배로 깍뜻하게 모시는것 같았다. 그런것만 볼때는 참 바른인간 이지만 사람이란 알수 없다고 속내가 더 없이 복잡하다는걸 증명하듯 녀석은 강간을 저질러 놓고 당당히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사실, 가해자의 입장에서 그말말고 무에 다른말을 할수 있겠냐도 싶지만 태도가 영 아니였다.
[키득키득] [웅성웅성]
뒤에서 속닥거리는 사람들을 남겨둔체 식당으로 가려는데 [턱-] 하니 누군가 어깨를 돌려세웠다. 응? 저 멀찍이 떨어져 있었던것 같은 우영원이 다리 기럭지를 자랑이라도 하듯 내 바로 뒤에서 나를 세운것 같았다. 빠르기도 하네. 아침에 눈이 마주치는것 만으로도 토기가 쏠리게 했던것과 달리 다시 본 우영원의 얼굴은 나쁘지 않았다. 솔직한 말로 객관적 기준에서 굉장히 미남인것이다. 그런데 이 잘생긴 녀석은 불만이 있는듯 나를 내려다 보며 인상을 그렸다. 잡은 손을 [탁] 쳐내려고 하는데 순간 머리 위로 짙푸른 우영원의 체취가 머리위로 확- 풍겨왔다.
“읍-“
고개를 도리질 쳤지만 맞닿인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고, 팔을 버둥였지만 녀석의 단단한 팔에 갖혀 헛지랄이었다. 그래, 헛지랄이란건 이런게 아닐까? 죽어라 퍼득이지만 날지못하는 펭귄의 몸짓같은것. 나의 헛지랄과 더불어 어떻게든 빠져나가 보려고 비틀어대는 허리 아래도 언젠가처럼 등뒤에 벽이 앞에는 녀석의 뜨거운 하체가 맞부딪치며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꽉 맞물린 톱니처럼 나와 녀석은 그렇게 붙어있었다. 맞물리고 싶지 않은 삶을 간절히 바라던 나의 소망을 가차없이 뭉개버린 우영원의 열기로 가득한 살덩이가 내 입안으로 들어와 정신없이 난폭하게 헤짚을때 주위에서 ‘여어…’ 라며 야유를 하며 휘파람까지 불어재끼는 인간들이 있다는것이 더욱 치욕 스러웠다. 우욱하고 토기가 올라올법도 한데 몸이 빳빳이 굳어만 질뿐 속이 울렁울렁 마구 출렁이기만 할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흐읍”
뒷머리가 거칠게 잡힌체로 좌로 우로 여러가지 패턴으로 내 입술을 [정확히는 입속이겠지만] 공략해 오는 우영원의 몸짓은 더할나위 없이 사나웠다. 머리에 쥐가 나듯 뻐근해 오는 기분이 들 무렵 목뒤가 뻐덕뻐덕 굳어질 무렵 [츄웁] 소리를 내며 떨어진 우영원은 붉디 붉은 자신의 입술을 좀더 선명한 붉은 빛의 혀로 한번 훑었다. 뭐하는 짓이야라고 묻는 내 눈빛에 얼어붙은 녀석의 눈빛이 한번 내리는가 싶더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하드키스. 명령 이행 했어요. 됐어요?”
하드키스? 하드섹스도 아니고 하드 뭐? 한국말로 하면 빡센 입술 박치기 정도 되겠네. 하하. 나의 신경이 바짝 곤두선 눈길을 받은 선배님들이 답지 않게 쫄으며 쭈뼛쭈뼛 내 눈치를 보신다. 뭐야? 진짜 댁들이 시켰어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물든 내게 그나마 착했던 수윤선배가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같지 않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니네둘이 10골 만들어낸 기념이지”
“그래, 그런거지”
“군대에는 신고식, 연예계에는 성인식, 축구에는 기념식이랄까, 하하하”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한거야. 저사람들 때문이거든. 나의 뜻과는 상관없어. 아주 포부도 당당한 우영원이 내눈앞에서 싸늘한 얼굴을 한체로 서있는게 보였다. 올려다 보는 순간 몸에 섬칫한 느낌이 척추를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오싹한 기운이 목덜미를 덮치는 순간 욱- 하고 구토증이 다시 발동했다.
” ……. 우욱 …….. “
이젠 정확히 알겠다. 아침엔 나에게 미안이라고 말하는 그 뻔뻔한 낯짝을 당당히 쳐든 우영원에게 역겨움을 느낀거였다. 그리고 지금은 이녀석 또 나에게 무슨짓이야? 라는 심각한 착각에 빠진 나에 대한 모멸감으로 인한 것이다. 도대체 녀석이 미안하다고 했던 그녀석이 또 내게 무슨짓을 할꺼라고 생각하다니 나는 과연 머리란걸 제대로 이용하고 있는걸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 ……….. 욱 – ……….. “
자신에 대한 역겨움. 너 뭔가 심각하게 착각한거 아니야?
그 심각한 착각이 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하루종일 신경과민으로 뻐근해오는 근육들을 주체를 못해서 일찌감치 알람을 맞춰두고 침대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달칵] 문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우영원이 스슥스슥- 옷깃 스치는 소리를 내며 옷을 벗는 기척이 들렸다. 그리고 잠시 뒤 침대에 몸을 누이는 소리가 들리고 조용히 침묵이 깔렸다. 지끈지끈. 어질렁하게 아파오던 머리는 핑도는 현기증 대신 이제는 흉기로 내려 찍는 극악의 고통을 전해주고 있었다. 도저히 못참겠다 싶어서 쉼호흡을 한번하고 스탠드를 밝혔다.
[지익-]
침대 밑에 넣어둔 스포츠 백을 열어 두통약을 꺼내 입에 물고 테이블 위에 놓인 물을 향해 걸어가던 찰라였다. [삐익] 반대편 침대의 불이 켜지며 냉정한 얼굴의 우영원이 내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
“뭘 그렇게 몰래 먹는거야?”
입안에서 쓴기운을 슬그머니 흘리고 있는 약도 짜증이었고, 머리가 여전히 지끈거리는것도 짜증이었고, 잠든것 같았던 녀석이 깨어있는것도 짜증이었고, 녀석이 잠들기를 기다린것 같은 나의 태도도 짜증스러웠다. 그래서 입속에 약을 문체로 악으로 한마디 툭 내뱉었다.
“마약이다”
‘흥’ 호모 새끼 강간범이 마약사범인들 무섭겠냐 싶어서 저벅저벅 발걸음도 거만스럽도록 걷고 있는데 몇걸음 움직인것 같지도 않은 우영원이 내앞에 서더니 지책없이 내 턱을 손으로 움켜쥐고 입술을 맞춰 입앞으로 혀를 밀어넣어 왔다.
“우우웁-“
아까도 불시에 당한거지만, 심지어는 강간도 불시에 당한거였지만 지금껏은 더욱 놀라버렸다. 한가한 태도로 나를 관망하던 우영원이 갑작스레 몸을 일으킬때에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다. 내 혀를 부드럽게 휘여감은 우영원은 내 입안에 깔깔하게 물려있던 맨드리한 알약 두개를 제입으로 훔쳐갔다. 그리고는 제손바닥 안에다 ‘툭툭’ 뱉어낸다. 알약을 빤히 들여다 보는 우영원의 표정은 굉장히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여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녀석의 감정나부랭이 보다 찌르는듯한 두통을 말끔히 잊어버리게 할만큼 엄청난 토기가 몰려와 나는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욕실로 뛰어가 버려야 했다.
“우욱-“
하루에 남자와 그것도 동일인물과 두번의 키스라니 정말 역겹구나라고 머리가 생각했다. 우웩-. 생각이 짙어질수록 토기는 더해졌고 저녁 식사를 하기전 속을 깨끗히 비우고 먹은 것으로 모자라 잠자기 전에 속을 깨끗하게 비우는 자신을 보며 어금니를 질끈 물어버리고 싶을만큼 짜증이 일었다.
“처음보는건데”
욕실에서 나와보니, 내가 토악질을 해대는것과는 상관 없이 침대에 앉아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 우영원이 약을 보며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아. 아직도 그게 마약이라고 생각하나보지? 이봐, 우영원씨 자네가 있는 프리미어 리그에는 마약이 그리 쉽게 나도는지 몰라도 나처럼 그냥 국내대학리그를 뛰고 있는 녀석에게는 마약이란 그냥 대통령 이름처럼 낯선것이라네. 모르나 보군. 거참, 대단히 높은 신분이라는거 온몸으로 표현하는 새낄세. 그려.
“두통약인데. 온국민의 두통약도 몰라?”
피식. 침대에 내려 앉으며 조소를 띄자 우영원의 표정이 언젠가 처럼 뻣뻣하게 굳어가는게 보였다. 그리고 반대로 녀석을 마주본 내 속이 엉기엉기 뒤엉켜서 다시금 토기를 느끼고 있었다. 얼굴 마주보고 눈 맞대하는 것만으로 토악질을 해야하는게 이녀석과의 숙명인가 보군. 니글니글 불편한 속때문에 인상을 팍 찡그리고 있는데 제 손바닥에 놓여 있는 두통약을 쓰레기 통에 털어내며 우영원이 내신경을 은근히 긁는 소리를 내뱉었다.
“아, 난 또 그몸에서 그런 체력이 나오길래 마약인줄 알았지”
“니네 호모는 그렇게 불쑥불쑥 아무나랑 입술 박치기를 하나보다”
녀석이 한말과 전혀 삔트가 맞지 않았지만 나는 따지듯 놈에게 쏘아붙여버렸다. 우영원은 뭔가 웃기다는 듯 미소를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했지만 그 웃는 얼굴에 속이 팍 상해서 울컹울컹 위가 울렁거리는게 한층 더 심해졌다.
“본의가 아니였어”
“아아, 그러시겠지”
그리고 벌떡 일어나 우당탕탕 다시한번 달려 우욱- 하고 변기를 잡고 올려댔다. 꼴좋다. 한껏 비꼬아 주고 올려대기라니. 이거야 말로 세계 최고의 멍청이 짓거리가 아닌가. 덤앤더머가 울고 가겠어. 스스로를 비식비식 비웃으며 몸을 일으켜 나가려는데 벽에 등을 기댄체 욕실 문앞에 서있던 우영원이 몸을 쓰윽 일으키며 입가심을 하는 나를 향해 한소리를 지지않고 쏘아붙였다. 남이 다 토할때까지 기다렸다가 열받는 소리를 하는게 영국식 매넌가 보다. 그딴건 배울필요가 없는데. 아니면, 우영원식의 기다렸다 염장지르기던지.
“홀몸이 아닌가봐”
입꼬리를 싸하게 말아올린 우영원의 미소가 그토록 가증스러울수가 없었다. 홀몸이 아니야? 그럼 더블몸이냐? 내가 최근에 잔 인간이라면 너 밖에 없는데 그럼 이 더블몸을 만든 주인공은 너냐? 그래? 욕실에 굴러다니는 플라스틱 통 아무거나 집히는대로 들고나와 홀연히 등을 돌리고 사라져 버린 우영원을 뒤따라가 냅다 던져줬다.
[퍽-]
자랑스럽게 녀석의 뒷통수를 가격한 샴프통은 팅팅팅 바닥에 떨어져 민망하게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그와 반대로 우영원은 입을 꽉 다문체로 나를 험하게 한번 노려보더니 한대 칠기색이다. 그러다가 참지 못했는지 제침대에 놓여있는 베개를 나에게 [휙-] 던졌다. 베개싸움에는 이골이 난터라 여유있게 녀석의 베개를 피한 나는 다리를 재빨리 놀려 침대 아래에 넣어놓은 스포츠백을 꺼내 앞뒤사정 재지않고 녀석에게 던져버렸다. 죽어!
[퍼어-ㄱ]
가방 바닥에 단단한 플라스틱 재질이 감싸고 있어 맞으면 상당히 아플터였으나 난 녀석이 그걸맞고 그냥 즉사해버리면 안될까, 이대로 스탠드라도 깨부셔서 녀석의 목을 주욱 그어버리면 안될까라는 살심으로 가득차 올랐다. 니가 죽었으면 좋겠다던 어느 유행가 가사의 사정과는 전혀 다른 나를 범한 녀석에 대한 단순 살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손에 잡히는대로 뭐든지 다 던져대고 있었다.
[와장창창] [우당탕탕] [쨍그랑]
있을법한 효과음은 다냈을 무렵 내가 눈을 휙 치켜뜨며 녀석을 돌아보고 소리를 치려는 순간 [끼익-] 하고 문이 열렸다.
“야”
“네”
울컥한 나는 한마디 대답도 못했는데 내가 던지 물건 고스라니 맞아댄 우영원은 나직하게 대답을 했다. 아마도 근처 방에서 자고 있던 선배가 참지 못하고 달려온것 같았다. 굉장히 불만스러운 표정의 선배는 우영원과 내가 오늘 세골을 넣은것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운동장 뺑뺑이라도 돌리고 심정이고 싶으실테지만 차마 그러진 못하고 최대한 험악한 분위기를 내새우고 있었다.
“자라”
“네”
[끼익] 문이 닫히는가 싶더니 벌컥 다시 열렸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배기라더라. 적당히 하고 그냥 자라”
씨익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남기고간 선배님이 그토록 원망스러울수가 없었다. 씨발, 누가 부부라는거야. 우욱-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또다시 토기가 찾아왔다. 제기랄. 씨발. 개같은. 썩을. 쌰앙. 갖가지 욕이 떠오르며 곧장 욕실로 뛰어갔다.
“우욱-“
이젠 정말 올릴것도 없는 위속인데도 불구하고 부던히도 토하려고 하는 몸이 힘겨웠다. 그만하자. 나만 힘들거든. 그러니까 그만하자. 이대로 곧장 가서 녀석을 본척 만척하고 자버려야지라고 다짐하는데 머리위로 서늘하고 차가운 우영원의 체취가 확 풍겨왔다. [토닥토닥토닥] 등을 조심스레 토닥이는 녀석의 손길은 한없이 인자하고 따스했다. 거기다 [스윽스윽, 토닥토닥토닥] 사람 속 달래는데 일가견이 있는 우영원의 토닥임을 부드럽기도 했다. 병주고 약주는게 이런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자 신경질이 확 솟아오른 내가 날카롭게 쏘아붙여버렸다.
“지랄말고 꺼져”
“뭐?”
등을 두드리는 손을 [탁] 쳐내고 다시 [우웩] 하고 토해냈다. 아무래도 정신적인것 같다. 녀석과 말을 하고 눈이 마주치면 치솟는 토악질. 끔찍한 두통조차 희미하게 만들정도로 복근을 얼얼하게 만들정도의 끝없는 토악질에 온몸에 힘이 빠졌다. [슥-] 제머리를 강타했던 샴프통을 자리에 바로놓으며 살벌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우영원을 보며 나는 조금 빈정였다.
“누구 덕분에 이고생인데, 애는 놓을까 지울까? 어쩔래? 놓으면 니 호적에 올릴거야?”
“뭐?”
갑자기 돌머리가 됐나. 녀석은 나의 가당치도 않은 말에 황당한듯 굳은 얼굴로 내 얼굴만 마주볼 뿐이다. 보지마 새꺄, 보는것 만으로 나는 니가 역겨워. 우욱-. 생각을 체 마치기도 전에 토기로 다시 변기에 얼굴을 들이밀고 올려댔다. 퉤. 침을 뱉고 입을 헹구는데 여전히 험악한 얼굴의 우영원이 저승사자 처럼 내 뒤에 서있다.
“가서 엎어져 자. 난 계속 구역질 할것 같으니까.”
“니 구역질이 나 때문이라는거야?”
서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욕실 특유의 쥥쥥대는 울림이 귀를 아프게 했다. 힘이 없어서 악으로 말하는 나는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는데다 김이 솔솔 날정도로 열이 오르기까지 했다. 니 덕분이라고 내가 말했잖아. 이씹새꺄. 쌍욕이 절로 나왔지만 입술을 꽉 물고 있다가 되도록 치사하게 비꼬아 주고팠다. 녀석의 염장에 소금을 확 뿌려주고 싶었다.
“너 같은거랑 상종하기 싫으니까 조용히 말할때 꺼져”
“난 분명 사과했어. 도대체 뭘 더 바래?”
“꺼지라잖아”
“꺼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두통약 먹으면서 마약이네 뭐네 하는거 다 쇼아니야?”
“쇼? 그냥 장난이라고 하는거다. 너 왕따였어? 그냥 흔히 있는 장난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마약먹었다고 장난도 하나보다?”
“호모 새끼랑 말하기 싫거든. 꺼져”
“호모, 호모, 그러는데 게이란 말이있다. 남지웅”
“내이름 부르지마. 더러워”
“그러는 넌 얼마나 깨끗한데? 변기통 붙들고 사정하는건 대단히도 깨끗한가 보다?”
“누구때문에 변기통한테 사정하는데!! 꺼지라잖아! 내 일이야! 내가 알아서 해. 가서 자라는데 웬 잔말이 그렇게 많아!”
“니가 뭔데 나한테 꺼지라 말라야?”
“싫으면 관둬. 여기서 아주 살아라. 내가 나갈테니”
웃기지도 않는 애들싸움을 하다 여기서 더하면 엄한꼴 보겠다 싶어 [휙-] 돌아나오는데 뒤에서 쿵쾅이며 우영원이 따라오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니 내 침대 위에는 정환이형이 우영원 침대 위에는 상철이형이 삭막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앉아계셨다. 우뚝- 다리가 절로 그자리에 부동의 자세로 멈춰섰다. 그것은 뒤따라오던 우영원도 마찬가지 였을터다.
“아아.. 해골이야”
나른하게 상철이 형이 나와 우영원 쪽으로 눈을 치켜뜨며 한마디 내뱉자, 그와 사뭇다르게 정환이 형이 험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상철이 형에게 턱짓을 하며 말했다.
“꺼내”
“그럴 필요까지야 있어?”
어딘지 사람을 잔뜩 골리는듯한 말투가 불안감을 조성했다. 저 작자들 무슨 생각이야. 오금이 저려와 그대로 엎어져 자고 싶은데 그래도 대선배님이신 두 선배가 침대를 각각 하나씩 점령하고 앉은체 만담을 꾸려가시니 어깃장 놓고 잠자게 비키시오 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니들- 오늘 큰일났다”
상철이 형은 짐짓 즐거운듯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그토록 얄미워보일수가 없었다.
“내가 조용히 시키라고 말했는데 니들 골 넣었다고 선배가 물로 보여?
아니면 골 넣은 놈은 밤에 소리 꽥꽥 질러도 돼? 경기 잘한다고 봐줬더니 하늘 높은줄 모르구나.”
꼭 저런다. 정환이형은 천재다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골이 났을 터였지만 그 천재다라는 말 뒤에 항상 골넣어라는 중압감이 있다. 골을 못 넣어도 아무렇지도 않은듯 잘생긴 얼굴에 시원시원한 미소를 띄고 있지만 속에 있던 짜증들이 잘못 걸리면 이런식으로 꼭 나오게 마련이다. 이것은 마치 노처녀가 시집 못간걸 히스테리 부릴때 처럼 이유도 뭣도 없는거다. 그냥 예쁜여자 보면 화가 나는 노처녀처럼 선배의 기준에서 기고만장한 후배들을 욕먹이기 위한 짜증내기 한판일 뿐인거다. 이 상황에선 골 넣고, 경기 잘해서 소리지른게 아니라 그냥 지른겁니다라고 말해봤자 먹히지 않는다.
“둘다 이리와”
무슨일인지 얼떨떨해서 한발작씩 다가가자 정환이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영원의 침대로 턱짓을 했다. 상철이 형은 어느새 몸을 일으켜 주머니를 뒤적이고 있었다. 우영원도 얼떨결에 떠밀려서 내옆으로 와 있었다.
“올라가”
침대 위로 올라가라는 말에 불신의 눈으로 두 선배님을 올려다 봤지만 별로 나의 간절한 눈빛에 관심이 없으신 두분은 우리가 다 올라갈 사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계셨다.
“후배가 말야 선배님 주무시는데 바락바락 소리나 지르고 그러면 안되는거 아니야? 야, 얼른 내놔봐”
“얘들 별로 사이 안좋아”
“사이 안좋긴 아까 잘만 키스하던데”
“야, 그래도”
“내놔. 맞고 내놀래 그냥 내놀래?”
“나 너한테 선배야”
“내가 인기 더많아. 빨랑 내놔”
“그런식으로 하면 얘들이 우리보다 인기 더많으니까 그냥 참아야 하는거 아니야?”
“내놔-“
옥신각식 하던 두선배님은 침대 위에 재물처럼 나란히 올라간 우영원과 나를 내려다 보더니 서로 마주보고 씨익 한번 웃으셨다. 그리고 상철이 형이 결코 내놓을것 같지 않았던 비밀의 무언가가 [찰캉-] 철소리를 내며 주머니 속에서 튀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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