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정악전습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교육기관인 조야구락부의 후신으로 1911년에 발족되었다. 이 때의 조선악과 교사진용은 당시 음악계에 명성 높던 이들로서 가곡에 하순일, 이영환, 거문고에 김경남, 조이순, 가야금에 명완벽, 함화진, 한규우, 양금에 백용진, 김상순, 생황에 한진구, 단소에 이춘우, 조동석 등 이었다. 이후 조선정악전습소는 1914년까지 제3회 졸업생을 내고 악서와 악보편찬의 일을 활발히 하였으나 1915년부터는 재정난 등으로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때부터는 정규과정에 의한 교습보다는 음악동호인회의 성격으로 음악활동을 하였는데 1920, 30년대의 음반과 라디오 출연 기록에 의하면 이때에는 ‘정악구락부’, ‘조선정악단’의 명칭으로 조이순, 조동석, 김계선, 지용구, 고재덕, 김영근, 김상순, 김일우, 민완식 등이 주로 줄풍류 연주 및 가곡반주들을 담당하였다. 1938년에 녹음된 이 음반의 조선정악전습소원의 구체적인 인적구성은 밝혀지지 않았고 다만 ‘이병우 외’라고 되어 있는데 염불, 평조회상, 취타, 상현도드리, 하현도드리를 연주한 음악인들도 대개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리라 추측된다.
위 정악곡의 악기편성은 염불은 거문고, 대금, 해금, 단소, 양금, 장구로 연주되었으며 그밖의 평조회상 중 상령산, 취타, 상현도드리, 하현도드리는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장구로 연주되었다. 즉 염불에는 일반적으로 줄풍류 연주에 포함되는 가야금과 피리가 빠졌고 평조회상을 비롯한 이하의 곡에서는 가야금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 점은 그 당시에 조선 정악전습소원에 의해 연주된 대부분의 정악곡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음악적인 이유에서라기 보다는 그 무렵의 조선정악전습소원 인적구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해된다.
평조회상이라 곡명이 붙은 곡은 상령산 중에서 처음 2각이 취입되었고, 취타는 5장 7째정간까지 어중간하게 녹음되어 있다. 연주 상에 드러나는 음악적 특성은 더욱 상세한 분석을 요하는 것이지만 특히 취타의 경우 각 음의 싯가분할이 현재 연주와 달라서 매우 흥미롭다.
– 송혜진(음악평론가)
원반: Victor KJ-1231-B(KRE 387) 취타
녹음: 1938.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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