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 null

백구

양희은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 우리 집에 살던 백구 해마다
봄가을이면 귀여운 강아지 낳았지 어느 해에 가을엔가

강아지를 낳다가 가엾은 우리 백구는 그만 쓰러져 버렸지
나하고 아빠 둘이서 백구를 품에 안고 학교 앞의

동물병원에 조심스레 찾아갔었지 무서운 가죽끈에 입을
꽁꽁 묶인 채 슬픈 듯이 나만 빤히 쳐다 봐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 하얀 옷의 의사 선생님 아픈 주사 놓으시는데
가엾은 우리 백구는 너무너무 아팠었나 봐 주사를 채 다

맞기 전 문 밖으로 달아나 어디 가는 거니 백구는 가는
길도 모르잖아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 음 학교 문을

지켜 주시는 할아버지한테 달려가 우리 백구 못
봤느냐고 다급하게 여쭤 봤더니 웬 하얀 개가 와서

쓰다듬어 달라길래 머리털을 쓸어줬더니 저리로
가더구나 토끼장이 있는 뒤뜰엔 아무 것도 뵈지

않았고 운동장에 노는 아이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줄넘기를 하는 아이 팔방하는 아이들아 우리 백구

어디 있는지 알면 가리켜 주렴아 학교 문을
나서려는데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앞을 지나가면서

혼잣말로 하는 말씀이 웬 하얀 개 한 마리 길을 건너
가려다 커다란 차에 치어서 그만…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 음 백구를 안고 돌아와 뒷동산을 헤매이다가
빨갛게 핀 맨드라미 꽃 그 곁에 묻어 주었지 그 날

밤엔 꿈을 꿨어 눈이 내리는 꿈을 철 이른 흰 눈이
뒷산에 소복소복 쌓이던 꿈을 긴 다리에 새 하얀

백구 음 음 내가 아주 어릴 때에 같이 살던 백구는
나만 보면 괜히 으르렁하고 심술을 부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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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
양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