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se1]
지하철역 앞의 구멍가게를 지나 집으로 걸어갈 때,
어떤 사내가 슬쩍 내게 말을 걸어왔네.
그는 적지 않게 놀란 내 모습을 보면서 환해진
표정으로 기뻐하네.
“김경환! 설마 했는데 너 맞네? 정말 세상 좁다 얘.
몸은 건강해? 옛날하고 똑같애!”
아 기억나네. 열 살 때 전학 때문에 떠난 내
꺼벙한 옛 친구. 무척 조용한 내 성격관 정반대로
유별나게 촐싹대던 녀석한테
묘하게도 공감대를 느껴, 난생
처음으로 마음을 열어주었던 그 녀석.
내가 똥싸개라고 불렀던 꼬마애.
“널 보면 꼭 거울같애.”
라며 곧잘 얘기하던 녀석과 난 그 동안에
못한 얘기들을 정답게 늘어놨네.
“그럼 갈게.”
“또 봐.”
“그래, 이거 우리 집 전환데 꼭 연락해.”
[있다]
바다에 비친 햇살을 보는 것처럼, 눈이 시렸어.
어쩌면 환영을 봤던 것만 같아.
뒤를 돌아보고 싶어졌어.
[Verse2]
그 날 새벽, 난 책상 서랍에서 뽀얗게
먼지 덮인 일기장을 꺼내 펼쳐봤네.
서로간의 소박했던 바램.
그것을 쏟아내던 날에 관한 몇 장의 기록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해,
기억은 녹아내리고 소각돼. 흘러간 세월 앞에
파묻혀, 함께 있어 참된 행복과
옛 추억 조차 퇴색되어가네. 생각해 보면 낮에,
수년 만에 엄청나게 성장해버린
그와 뻔하게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누며 난 계속 자꾸 뭔가 꽤나 먼 관계,
심지어는 동창생의 한 명으로밖엔
보이지 않아 조금 혼란했어. 머릿속이 복잡해.
난 또 혼자된 절망에 빠져가네.
날 옭아맨 험한 외로움의 골짜기에서
날 내보내줘. 여긴 너무 적막해…
[있다]
여긴 나 혼자 있는 방.
꽤나 오랫동안 여기 있었지.
누군가 문을 열고 이 방으로 들어와 줬으면.
[Verse3]
(여보세요?)
“어 난데 너한테 할 말 있어. 한때는
너가 내 코앞에 있다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했어. 한데, 니가 멀리 떠난 뒤엔
점차 내가 커감에 따라 변하게 돼버렸어.
난 너와의 어릴 적 관계 따위는,
고작해야 몇 판의 오락게임처럼
무가치하게 느껴져 무표정한 얼굴로
만났던 좀 아까도 너와 난 서먹했었잖아…”
“경환아, 걱정 마. 난 조금도
섭섭하게 느끼지 않았어. 마냥
널 탓하고 속상해하지마.
시간이 흐르면 누구도 변하는 게 당연한데 뭘 자책하고 그래, 어?
넌 참 괜한 걱정만 해. 대체 뭘 바래?
언제까지나 허황된 공상에 빠져 살래?
멀어져간 몇몇 관계를 솎아내는 건
무정한 게 아냐. 괜찮아…”
[있다]
시간이 흐르고 누구도 변해가네.
멀어져가. 놓치고 싶지 않아.
시간이 흐르고 누구도 변해가네.
멀어져가. 놓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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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화나(F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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